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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5, 2020

잠수함 자체 건조 착수…'맨땅의 헤딩'하던 대만 꿈 이루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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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
“예전 중국에 나이 90이 된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았다. 노인의 집 앞엔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 있었다. 두 산이 마을을 가로막아 외지로 나가려면 늘 돌아나가야 했다.

[이철재의 밀담]

 
우공은 가족과 함께 산을 판 뒤 흙은 발해(渤海)에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비웃었다. 우공은 “내가 못 이루면 내 아들이, 내 아들이 못하면 내 손자가 이을 것이다. 언젠가는 산을 모두 없애 길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두 산의 산신령이 천제(天帝)에게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천제는 두 산을 옮겨버렸다.”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에 나온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대만 해군의 잠수함 하이파오(SS 792). 이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됐다. [유튜브 AFP 계정 캡처]

대만 해군의 잠수함 하이파오(SS 792). 이 잠수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건조됐다. [유튜브 AFP 계정 캡처]

대만의 잠수함 사업은 우공이산을 떠오르게 한다. 중국이 10년 넘게 갖은 술수로 방해했지만, 대만은 드디어 잠수함 건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대만의 차잉원(蔡英文) 총통(한국의 대통령)은 가오슝(高雄) 대만국제조선공사(CSBC) 조선소에서 열린 잠수함 기공식에 참석했다. 대만은 2024년을 시작으로 2500~3000t급 국산 디젤 잠수함을 8척 건조할 계획이다. 대만에선 잠함국조(潛艦國造) 계획이라 부르며, 영어론 IDS(Indigenous Defense Submarineㆍ독자형 방어 잠수함)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졌다.

 
이 기공식엔 차잉원 총통을 비롯해 옌더파(嚴德發) 국방부장(국방부 장관), 황수광(黃曙光) 참모총장(합참의장) 등 대만군 지휘부가 자리했다.

 
차잉원 총통은 이날 “잠수함 건조를 통해 우리의 자주국방 능력을 세상에 확실히 알릴 것”이라며 “이 잠수함은 우리 해군의 비대칭 전력을 개선하고, 대만 영토 주변 적들의 함선을 봉쇄하고 위협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대 정부는 걸어가지 않은 이 길을 가면서 모든 종류의 도전과 의심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도전과 의심은 우리를 패배시키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차잉원 총통은 그동안 대만의 국산 잠수함 건조 계획이 녹록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대만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라도 자체 잠수함 건조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50억 달러(약 5조 4000억원)를 쏟아붓는 천문학적 금액의 프로젝트다.

 

지난달 24일 대만 카오슝(高雄)에서 열린 잠수함 기공식에서 차잉원(蔡英文) 총통이 연설하고 있다. [차잉원 총통 트위터 계정]

지난달 24일 대만 카오슝(高雄)에서 열린 잠수함 기공식에서 차잉원(蔡英文) 총통이 연설하고 있다. [차잉원 총통 트위터 계정]

첫 4척의 설계·건조 비용만 해도 이렇다. 잠수함 한 척당 1조원이 넘는 셈이다. 중국이 집요하게 방해한 탓에 해외도입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은 ‘우공이산’처럼 험난한 과정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잠수함이 아직도 현역

중국과 대만의 전력차는 매우 크다. 잠수함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전략잠수함(SSBN) 7척, 핵추진 공격잠수함(SSN) 12척, 재래식 잠수함(SS) 5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대만은 하이스(海獅)급 2척과 하이룽(海龍)급 2척 등 재래식 잠수함만 4척에 불과하다.  
 
대만 해군의 하이룽급 잠수함. [대만 해군]

대만 해군의 하이룽급 잠수함. [대만 해군]

하이스급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건조한 커틀러스급 잠수함을 1973년 대만이 받아간 것이다. 별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굴린 잠수함(World‘s oldest longest-serving submarines)’이다. 현재 훈련함으로 쓰고 있다.
 
하이룽급은 대만이 1986년 네덜란드 즈바르디스급 잠수함을 수입해온 것이다. 대만은 네덜란드에서 당초 6척을 사들이려고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우선 2척을 먼저 구매하기로 했다. 4척은 나중에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추가로 들여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모든 외교 수단을 이용해 네덜란드를 압박했다. 결국 네덜란드 의회는 잠수함 4척을 대만에 추가로 수출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국은 잠수함을 비롯한 첨단무기를 대만이 수입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 공작을 펴왔다.

 

대만 해군의 하이스급 잠수함. [대만 해군]

대만 해군의 하이스급 잠수함. [대만 해군]

해군 잠수함 함장을 지낸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만이 재래식 잠수함을 가진다고 해서 중국이 안보 위협을 느끼진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현재 중국의 대잠수함전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유사시 대만을 침공할 때 상륙함과 수송함을 제대로 지키기 힘들다. 잠수함은 대만에 상당한 억제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에 손 벌려봤지만…

대만은 잠수함을 한 척이라도 건조한 경력이 없다. 그러나 자국의 잠수함대를 늘리는 목표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외부 조건이 대만에 불리했다.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 대만국제조선공사(CSBC)의 플로팅 독. 여기서 대만 잠수함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위키미디어]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 대만국제조선공사(CSBC)의 플로팅 독. 여기서 대만 잠수함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위키미디어]

대만은 먼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대만에 잠수함을 파는 것을 거부했다. 잠수함이 공격용 무기라는 이유에서다. 1979년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뒤 대만을 달래기 위해 만든 대만관계법에 따르면 미국은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만은 아르헨티나나 노르웨이에서 쓰고 있는 독일제 잠수함을 중고로 수입하려고 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만에 8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수출하는 방안을 승인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이를 뒤집었다. 그 내면엔 사정이 있었다.
 
미국 해군의 잠수함은 모두 핵추진 방식이다. 디젤로 가는 재래식 잠수함을 만들려면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의 설계도를 사와야 한다. 그런데 두 나라가 자국 설계의 잠수함을 대만에 주는 것을 꺼렸다.

 
2003년엔 이탈리아가 자국의 사우로급 잠수함 8척을 개조한 뒤 대만에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번엔 대만이 사절했다.
 
2004년 미국의 잉걸 조선소는 대만에 신형 디젤 잠수함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 역시 후속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03년 미국산 재래식 잠수함 8척의 가격이 105억 달러(약 14조원)가 넘는다는 계산서를 대만에 넘겨줬다고 한다.
 
결국 대만은 급한 대로 2016년 하이룽급 잠수함 2척을 15년 더 쓸 수 있도록 개량했다.
 

대만 잠수함 놓고 남북 대결 일어났을 뻔?  

2014년 대만은 잠함국조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국산 잠수함 건조는 대만엔 ‘맨땅의 헤딩’이다. 문근식 교수는 ”대만은 하이스급과 하이룽급을 역설계하면서 잠수함의 기본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요즘 잠수함에선 전자장비와 무기체계를 통합하는 노하우가 더 중요해졌다. 대만은 이런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기공식에서 선보인 대만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 모형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4일 기공식에서 선보인 대만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 모형도. [로이터=연합뉴스]

해외에서 기술을 들여올 루트를 확보하는 게 잠함국조 계획의 필수사항이 됐다. 하지만 해외 기술선 확보는 난제였다.
 
서방권에서 재래식 잠수함을 설계할 수 있는 국가는 독일ㆍ프랑스ㆍ스웨덴과 한국ㆍ일본이다.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스페인ㆍ호주다. 서방권은 아니지만, 인도가 잠수함 건조 경험이 많다. 이들 모두 대만과 잠수함 협력에 난색을 보였다.

 
눈을 동쪽으로 돌려 중국을 제외하면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는 미국 다음의 잠수함 강국이다. 핵잠과 재래식 잠수함을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만에 잠수함 기술을 팔리가 만무하다.
 
대만이 전 세계를 상대로 기술 도입선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나온 게 남북 대결이었다. 대만 언론은 지난해 4월 북한이 대만에 잠수함 기술을 팔겠다고 제안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 조선업체가 설명회를 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
 
대만이 대북 경제제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북한과 손을 잡을 순 없을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때문에 중국에 크게 당한 한국이 대만과 잠수함 관련 협력을 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결국 미국이 나섰다. 2018년 4월 미 국무부는 미국 조선업체가 잠수함 건조 기술을 대만에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올해 5월 미 국무부는 대만에 MK-48 어뢰 18기와 관련 장비 등을 대만에 판매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이 어뢰는 잠수함에서 쏘는 것이다. 또 대만은 미국의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최신 잠수함 전투 시스템을 사기로 했다. 대만은 IDS를 MK-48 어뢰와 UGM-84L 잠수함발사 하픈 블럭 II 미사일로 무장할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기공식에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턴슨 사무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의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만 해군의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 모형. [대만 해군]

대만 해군의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 모형. [대만 해군]

김태호 한림대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대만 카드를 쓰겠다고 작정하면서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국적 기술자를 비밀리에 모아

IDS의 설계업체는 영국의 개브론 리미티드(Gavron Limited)다. 그런데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낸 이 회사는 음료ㆍ담배소매 업체로 2016년에 폐업신고를 냈다. 그러다 스페인 남부 영국령 지브롤터에 똑같은 이름의 회사가 2013년 차려졌다. 이 같은 이유로 대만에선 의혹을 제기하는 여론이 일었고, 야당인 국민당이 국정 조사를 요구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이 호위함과 함께 항해하고 있다. 중국의 항모는 대만 해군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의 첫번째 목표가 될 것이다. [STRㆍAFP=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이 호위함과 함께 항해하고 있다. 중국의 항모는 대만 해군 IDS(독자형 방어 잠수함)의 첫번째 목표가 될 것이다. [STRㆍAFP=연합뉴스]

이 회사는 위장 회사일 것이란 추정이 많다. 대만이 서방권 기술자를 대놓고 스카우트할 수 없으니, 위장 회사를 세웠다는 뜻이다. 주로 유럽의 잠수함 설계 전문가가 이 회사에 다수 포진해 있다. 회사의 실제 주인은 대만 정부일 가능성이 있다.

 
한국도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에 관여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일본ㆍ한국ㆍ이탈리아ㆍ독일 국적 잠수함 관련 기술자들이 대만 가오슝(高雄)시의 한 호텔에 묵으려고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숙박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방산 소식통은 “대기업은 없고 개인이 일부 대만에 갔다”며 “설계와 같은 핵심은 아니고 부대ㆍ관련 시설을 마련하는 데 컨설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만 내부에서도 잠함국조 계획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다.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또 대만의 집권 여당인 민진당은 잠함국조 계획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을 상대로 으르렁거리는 중국에 대해 대만 정부도 나름 대비를 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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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이 그토록 대만의 잠수함 도입을 훼방 놓았던 이유는 그만큼 껄끄럽기 때문이다. 대만의 IDS가 대만의 방어력을 높일 것이란 계산은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 반대파도 수긍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대만은 우공이산의 우공처럼 우직하게 잠수함 건조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대만이 우리에게 던진 교훈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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