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밀담]
우공은 가족과 함께 산을 판 뒤 흙은 발해(渤海)에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비웃었다. 우공은 “내가 못 이루면 내 아들이, 내 아들이 못하면 내 손자가 이을 것이다. 언젠가는 산을 모두 없애 길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두 산의 산신령이 천제(天帝)에게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천제는 두 산을 옮겨버렸다.”
중국의 고전 『열자(列子)』에 나온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지난달 24일 대만의 차잉원(蔡英文) 총통(한국의 대통령)은 가오슝(高雄) 대만국제조선공사(CSBC) 조선소에서 열린 잠수함 기공식에 참석했다. 대만은 2024년을 시작으로 2500~3000t급 국산 디젤 잠수함을 8척 건조할 계획이다. 대만에선 잠함국조(潛艦國造) 계획이라 부르며, 영어론 IDS(Indigenous Defense Submarineㆍ독자형 방어 잠수함)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졌다.
이 기공식엔 차잉원 총통을 비롯해 옌더파(嚴德發) 국방부장(국방부 장관), 황수광(黃曙光) 참모총장(합참의장) 등 대만군 지휘부가 자리했다.
차잉원 총통은 이날 “잠수함 건조를 통해 우리의 자주국방 능력을 세상에 확실히 알릴 것”이라며 “이 잠수함은 우리 해군의 비대칭 전력을 개선하고, 대만 영토 주변 적들의 함선을 봉쇄하고 위협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대 정부는 걸어가지 않은 이 길을 가면서 모든 종류의 도전과 의심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도전과 의심은 우리를 패배시키지 못했다”고 역설했다.
차잉원 총통은 그동안 대만의 국산 잠수함 건조 계획이 녹록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대만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라도 자체 잠수함 건조 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50억 달러(약 5조 4000억원)를 쏟아붓는 천문학적 금액의 프로젝트다.
제2차 세계대전 잠수함이 아직도 현역
하이룽급은 대만이 1986년 네덜란드 즈바르디스급 잠수함을 수입해온 것이다. 대만은 네덜란드에서 당초 6척을 사들이려고 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우선 2척을 먼저 구매하기로 했다. 4척은 나중에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추가로 들여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모든 외교 수단을 이용해 네덜란드를 압박했다. 결국 네덜란드 의회는 잠수함 4척을 대만에 추가로 수출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중국은 잠수함을 비롯한 첨단무기를 대만이 수입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 공작을 펴왔다.
미국과 유럽에 손 벌려봤지만…
대만은 아르헨티나나 노르웨이에서 쓰고 있는 독일제 잠수함을 중고로 수입하려고 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만에 8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수출하는 방안을 승인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이를 뒤집었다. 그 내면엔 사정이 있었다.
미국 해군의 잠수함은 모두 핵추진 방식이다. 디젤로 가는 재래식 잠수함을 만들려면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의 설계도를 사와야 한다. 그런데 두 나라가 자국 설계의 잠수함을 대만에 주는 것을 꺼렸다.
2003년엔 이탈리아가 자국의 사우로급 잠수함 8척을 개조한 뒤 대만에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번엔 대만이 사절했다.
2004년 미국의 잉걸 조선소는 대만에 신형 디젤 잠수함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 역시 후속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03년 미국산 재래식 잠수함 8척의 가격이 105억 달러(약 14조원)가 넘는다는 계산서를 대만에 넘겨줬다고 한다.
결국 대만은 급한 대로 2016년 하이룽급 잠수함 2척을 15년 더 쓸 수 있도록 개량했다.
대만 잠수함 놓고 남북 대결 일어났을 뻔?
서방권에서 재래식 잠수함을 설계할 수 있는 국가는 독일ㆍ프랑스ㆍ스웨덴과 한국ㆍ일본이다.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스페인ㆍ호주다. 서방권은 아니지만, 인도가 잠수함 건조 경험이 많다. 이들 모두 대만과 잠수함 협력에 난색을 보였다.
눈을 동쪽으로 돌려 중국을 제외하면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는 미국 다음의 잠수함 강국이다. 핵잠과 재래식 잠수함을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만에 잠수함 기술을 팔리가 만무하다.
대만이 전 세계를 상대로 기술 도입선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나온 게 남북 대결이었다. 대만 언론은 지난해 4월 북한이 대만에 잠수함 기술을 팔겠다고 제안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 조선업체가 설명회를 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
대만이 대북 경제제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북한과 손을 잡을 순 없을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때문에 중국에 크게 당한 한국이 대만과 잠수함 관련 협력을 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결국 미국이 나섰다. 2018년 4월 미 국무부는 미국 조선업체가 잠수함 건조 기술을 대만에 판매하는 것을 승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올해 5월 미 국무부는 대만에 MK-48 어뢰 18기와 관련 장비 등을 대만에 판매하는 계약을 승인했다. 이 어뢰는 잠수함에서 쏘는 것이다. 또 대만은 미국의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최신 잠수함 전투 시스템을 사기로 했다. 대만은 IDS를 MK-48 어뢰와 UGM-84L 잠수함발사 하픈 블럭 II 미사일로 무장할 계획이다.
지난달 24일 기공식에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격인 미국재대만협회(AIT)의 윌리엄 브렌트 크리스턴슨 사무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의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국적 기술자를 비밀리에 모아
한국도 대만의 잠함국조 계획에 관여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일본ㆍ한국ㆍ이탈리아ㆍ독일 국적 잠수함 관련 기술자들이 대만 가오슝(高雄)시의 한 호텔에 묵으려고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숙박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방산 소식통은 “대기업은 없고 개인이 일부 대만에 갔다”며 “설계와 같은 핵심은 아니고 부대ㆍ관련 시설을 마련하는 데 컨설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만 내부에서도 잠함국조 계획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다.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또 대만의 집권 여당인 민진당은 잠함국조 계획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을 상대로 으르렁거리는 중국에 대해 대만 정부도 나름 대비를 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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