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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도 주님의 자녀들”
성소수자 언급은 자제해오다
“이제 때가 왔다” 판단한 듯
충격 우려 다큐형식 선택한 듯
교계 보수층 거센 반발
“교황, 교리 바꿀 권한 없다”
변화로 이어질지 미지수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결합 지지 발언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21일(현지시각) 교황이 주례 메시지를 발표한 뒤 주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각) 시민결합법을 통한 동성커플의 권리 보호를 공개 지지한 것은,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한 중대한 방향 전환을 위한 큰 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시민결합법 지지는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데서 나아가 동성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인정한다는 의미여서, 교회 안팎에서 격렬한 문화투쟁의 포문을 열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감독 예브게니 아피네옙스키)에서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위해) 만들어야 하는 건 시민결합법이다. 이를 통해 그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고, 나는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은 과거 행적을 생각할 때 이례적이다. 교황은 지난 4일 발표한 즉위 이후 세번째 회칙에서 전세계의 힘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곳곳에서 표현했다. ‘모든 형제’라는 회칙의 제목이 상징하듯 교황은 이주민이나 빈곤층 등 ‘평범한 이들’의 문제를 세세히 거론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교황은 때때로 성소수자 권리 보호를 촉구했지만, 동성커플의 지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2016년 4월에 발표한 ‘교황 권고’에서는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이다. 동성결합은 기독교의 결혼과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없다”고 썼다. 2018년 6월 바티칸 가정협의회 연설에서도 “신의 형상을 한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형태만이 유일한 가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동성애를 용인하는 태도도 보였다. 같은 해 5월 칠레의 가톨릭 성학대 피해자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당신이 동성애자인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신이 당신을 그렇게 창조했고 그 모습대로 사랑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이 발언을 전하며 “교황이 동성애에 대한 가톨릭 내 변화를 원하지만 보수층의 저항 때문에 나서지 못한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이 ‘이제 때가 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다만 충격을 고려해 설교나 공식 문서 대신 다큐멘터리 인터뷰 형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결합법은 동성애자 권리 보장 측면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의 차선책이다. 시민결합법은 법적 혼인관계 밖에 있는 커플에게도 입양과 상속 등 혼인관계에 따른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다. 이탈리아 등 10여개 나라가 이를 통해 동성커플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교황이 보수층의 반발을 무마하며 가톨릭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동성애 단체들은 교황의 이번 발언이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며 즉각 환영했다. 미국의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은 “동성결합에 대한 교황의 명확하고 공개적인 지지는 가톨릭교회와 성소수자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층은 즉각 반발했다. 보수 성향인 미국의 ‘종교와 시민권을 위한 가톨릭 리그’의 빌 도너휴 대표는 “(그의 발언이) 교리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교황은 교리를 바꿀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가톨릭 교리를 담당하는 기구인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은 2003년 “동성애자에 대한 존중이 동성 행위를 승인하거나 동성간 결합에 대한 법률적 승인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신앙교리성은 또 “동성결합이 인간사회의 적절한 발전에 유해하다고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가톨릭이 이런 공식 교리를 바꾸려면 수많은 논의와 합의 절차가 필요하며, 보수층의 반발을 생각할 때 이 과정은 극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황의 이번 발언이 전세계 성소수자 운동 세력에 큰 힘을 실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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